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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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태양이 밝기를 줄이고, 이내 어둠이 내려앉으면, <슌-허노르>는 저녁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짧은 명멸과 함께 가로등이 켜진다. 깔끔하게 닦인 직선의 도로 위로 레일을 따라 트램이 움직이다, 신호에 멎는다. 유별나지 않은 속도의 걸음들이 보도를 따라 잠시 엉키고 흩어진다. 그대로 <중앙>의 청사 창가에 선 채 소날리 이라니는 그와 다르지 않은 속도로 뒤에서 다가오는 하나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소날리 이라니가 몸을 튼다.


ㅡ이게 얼마만입니까, 이스마일.

ㅡ오랜만이에요, 소날리. 중앙은?

ㅡ무탈합니다. 늘 그렇듯이.

ㅡ제5도시도 물어보셔야죠.

ㅡ하하, 제5도시는 무탈합니까?


진한 갈색 머리카락의 이스마일이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린다. 소날리 이라니가 무심코 시선 끝을 좇고 이스마일이 읊는다.


ㅡ무탈하지요. 평온하고요.


꼬인 곳 없이 구획된 <중앙>의 풍경은 사뭇 정갈하다. 이스마일의 시선 끝에서 소날리 이라니는 다시금 흐트러지지 않은 지하도시의 모습을 발견한다. 작게 입술이 열린다.


ㅡ평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날리 이라니의 낯에는 가벼운 웃음이 번진다.


ㅡ제5도시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당장 몇 개 소도시의 시민들이 주릴 텐데.


이스마일이 따라 얕은 미소를 머금는다. 곧 이스마일은 투명한 창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ㅡ중앙만 하겠어요.

ㅡ부인하지 못할 말이지만, 이 지하도시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습니다.

ㅡ익히 아는 바대로요. 안온하게…….


소날리 이라니는 문득 그런 간극에서 말이 되지 않은 단어를 읽는다. 창밖에서 신호가 바뀐다. 소날리 이라니의 눈이 이스마일의 말없는 옆얼굴을 좇는다.


ㅡ하실 말씀이라도?

ㅡ프로젝트 말입니다.


소날리 이라니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내 직선이 유한 호선으로 바뀐다.


ㅡ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ㅡ예단하긴 이릅니다. 그러나 특이능력자의 등장은 분명 이전에 없던 가능성이죠.

ㅡ특이능력자들의 등장부터 최근 도시 확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술렁이는 이들이 많아요.

ㅡ그러니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상탐색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무인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ㅡ위험부담을 포함해서,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ㅡ아뇨.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소날리 이라니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당긴다. 이스마일은 대답하지 않는다.


ㅡ<대폭발> 이후로 세 세대째입니다. 이미 땅 위에 소속감을 느끼는 이들은 많이 줄어든 반면, 더이상 지하에서 도시를 확장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이스마일은 그 모든 단어의 행간에서 어떤 완고함을 느낀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고, 소날리 이라니는 정적을 애써 해소하지 않는다. 막역하지 않은 공백 속에서 그들은 <중앙>의 청사 앞으로 조금 급한 발걸음 하나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본다. 이스마일이 눈을 깜박인다.


ㅡ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가 보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ㅡ해결할 겁니다. 예비 탐색대의 수료가 곧인데, 큰일이 있어선 안 되죠. 격려 차 <중앙>에서 사람을 보낼 예정입니다…….


소날리 이라니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마일은 창 밖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그들 중의 누구도 지상의 풍경을 그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조금 빛바래고 훼손된 채로 그리움과 섞여 남은 과거의 사진과는 다르게, 눈앞의 그 도시는 언뜻 완전해 보인다. 그는 청사의 앞에서 움직이던 그 인영이 제자리에 멈추어 무언가를 줍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오래지 않은 움직임 끝에, 인영은 다시 조급한 걸음으로 곧 청사 안에 몸을 감춘다.


이스마일이 입을 연다.


ㅡ행운을 빕니다.


소날리 이라니가 부드럽게 웃는다.


ㅡ그렇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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